본문 바로가기
세상이야기/수다로 푸는 세상

효성 요양보호사 교육원과 인연3(효성 요양보호사 교육원의 수강 스케치)

by 威儀진칠수 2023. 3. 10.

 

     요양보호사 교육 개강 첫날 날씨가 무척 심술 부렸다. 평상 온도는 낮아야 영하 5도 내외였다. 영하 15도를 웃돌았으니 심술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심술은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할 때 부리는 엉덩이에 난 뿔과 같은 것이다. 간만에 서민들의 움츠린 어깨 펴는 모습이 눈꼴 사나웠나. 이러나 저러나 교육원에는 가야 하니 올빼미처럼 눈만 드러낸 채 교육원으로 종종 걸음 쳤다.

 

     나는 두 번째 방문임에도 여전히 교육원이 낯설다. 다른 수강생들은 첫 등원으로 낯선데다 강의실까지 춥다면 원성이 자자할 것 같다. 이런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강의실은 히터 작동으로 온기가 가득했다. 여느 학원 강의실과 마찬가지로 단상, 보드,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강의실 한쪽 모서리에 놓인 침대에 눈길이 간다. 침대에는 사람 모형이 맨살을 드러낸 채 이불은 덮은 둥 마는 둥 누워 있었다. 물론 용도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딘가. 요양보호사 교육원 아닌가.

 

     강의실이 넓으면 겨울엔 더욱 춥다. 반면 강의실이 좁으면 여름엔 사람 온기까지 겹쳐 찜통을 방불케 할 것이다. 그런데 효성 요양보호사 교육원은 딱 알맞은 넓이의 공간이었다. 겨울 추위도, 여름 더위도 모두 비껴갈 것 같았다. 강의실 우측 벽에는 그동안 이 교육원의 수많은 선배 기수들 수료 사진이 쭉 걸려 있었다. 강의실 뒤쪽에는 온수통과 종이컵이 마련되어 있었다. 온종일 강의를 들어야 하는 수강생의 편의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학원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수강생의 편의 차원에서 다양한 편의시설을 마련한 것이지 싶다. 따듯하게 먹을 수 있도록 전자레인지도 갖춰져 있었다. 뒤쪽 안내판에는 요양보호사 관련 다양한 정보들이 호기심으로 가득한 교육생의 눈길을 붙들고 있었다.

 

     교육생은 모두 첫 대면이라 서먹서먹 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한 나는 빈자리에 그냥 앉았다. 지정석이  아니라 먼저 자리 잡는 사람이 임자다. 9시가 넘어가자 빈자리는 하나 둘 채워졌다. 사이드 몇 자리만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덩그러했다. 약 40여 명의 교육생이 각자 마음에 드는 자리나 무심결에 앉았을 것이다. 눈으로 대충 훑어도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은 듯하다. 강의실은 여성 일색이었다. 눈으로 대략 셈해 보니 남성은 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여성이었다. 압도적이다. 무리진 남성 앞을 한 명의 여성은 거리낌 없이 지나갈 수 있으나, 반대의 경우는 힘들다고 한다. 6주간 교육이 공포로 다가오는 듯 하다. 수적으로 열세이긴 하지만 설마 해치기야 하겠어.

 

     09시 10분이 되자 실장님의 교육에 대한 안내가 시작되었다. 오리엔테이션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첫마디는 대게 관례적이고 사무적인 인사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장님은 일반적인 상식과 관례를 깨고 밝고 환한 모습으로 “안녕하세요, ^^ 추운 날씨에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 라며 몸도 마음도 모두 냉동 상태인 교육생을 아름다운 미소와 따듯한 말로 녹여 주셨다. 처음은 뭐든지 긴장되기 마련이다. 긴장은 추운 겨울 냉동 상태와 다를 바 없으므로 이때 필요한 것은 이를 녹이는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이 필요한 것이다. 실장님이 그 역할을 해 주셨다. 첫 인상은 과정 전체를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다. 실장님 첫인상은 수료날까지 그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교육생은 모두 수료했지만, 실장님의 친절은 여전히 재학 중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모든 교육생은 실습까지 마치고 수료한 상태다. 그런데 효성 요양보호사 교육원 실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개인 접수한 나에게 먼저 필기시험 일자를 여쭈었다. 그리고 시험 합격하는 경우 건강진단서 발급 등 필요한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 주셨다. 물론 수료 전 학원에서 이미 설명해 주신 내용이다. 행여나 놓칠까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당부의 전화를 주신 것이다. 40여 명의 교육생이니 40번 이상을 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했을 것이다. 전화로 일일이 연락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1주일에 한 번이라도 멀리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하는 자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시라. 실장님은 교육생에게 일괄적으로 문자로 날려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오는 화사한 봄꽃같이 부드럽고 달콤한 실장님 음성이 흘러 나왔다. 생각지도 않던 귀 호강을 한 것이다. 전원 합격 예감은 지나친 바람일까. 몇 점으로 합격하느냐의 문제만 남은 것이다. 교육생은 모두 수료하였지만, 실장님의 친절은 여전히 수료 없이 재학 중이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했을 리 없다. 사람 마음은 은연중 거기서 거기다.

 

     다시 첫 수강 모습의 스케치로 돌아가자. 실장님은 현재 앉은 자리를 한 달 반 동안 고정 자리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교육생은 동의했다. 얼떨결에 앉은 자리가 6주간 고정 자리가 된 것이다.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한편 안도했고 한편 서운했다. 그래도 전자가 진솔한 내 속마음이었다. 천성이 내성적이라 조용한 가운데 교육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옆자리에 다른 분이 앉았다면 6주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낼 수는 없다. 확률상 여성일 경우가 90%인데 더욱 묵언으로 지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장님의 설명은 이어졌다. 요양보호사 교육은 무엇보다 출결이 중요하다 했다. 정해진 시간을 충족하지 않으면 시험 칠 수가 없다고 했다. 출석과 퇴실은 지문으로 체크하므로 정확한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본인이 직접 이름을 적는 자필 서명을 해야 했다. 빠트리는 교육생은 늘 있었다. 5주 교육 기간 내내 실장님 일과 중 하나가 서명 부탁이었다. 그런데도 첫 대면에서 보여주셨던 미소와 부드러운 어조에는 변함 없었다. 얼마 전 식당에서 AI 서빙 기계를 보았다. 그렇다면 사무실에 앉아 있는 AI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AI는 감정이 없다. 실장님과 같은 화사한 미소를 짓는 AI는 없다. 

 

     나는 40여 명의 교육생 중 중간에서 상위에 해당하는 나이 정도로 보였다. 매 시간 서명하는 출석부에는 교육생 각자의 생년월일이 기재되어서 나왔다. 효성 요양보호사 교육원의 유일한 흠으로 생각되었다. 연세 드신 분일수록 나이 밝히길 꺼린다. 교육생들은 매시간 자필로 서명하면서 힐끔힐끔 다른 교육생 나이를 스크린했다. 나 또한 그랬다. 44년생 남자 분이 보였다. 자리로 돌아와 어떤 분인지 두리번거렸다. 남자는 나를 제외하고 3분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대단하신 분이다. 나이 노출의 문제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것이다. 긍정 부정 여부를 떠나 나이를 노출하게 된 것은 교육원 결정이 아닌 노동부 결정일 것이다. 노동부 잘못을 탓할 일이다. 그러나 수용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학원 잘못은 특히 실장님 잘못은 더더욱 아니리라.

 

     나이가 많은 축에 들어도 나름 총기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교육생에 비해 살짝 잘난 척하는 아만을 가졌다. 그런데 이런 아만과 자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누구도 실수하지 않은 출퇴 체크 실수를 가장 먼저 저지른 바보가 되었다.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 그렇게도 실장님 당부가 있었건만 그것도 잊은 채 퇴실 지문을 찍지 않고 보무도 당당히 집으로 향한 바보가 된 것이다. 오직 나 한 사람만 지문을 찍지 않은 개강 첫날 실장님은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실장님의 발 동동 굴렸을 첫 개강 날 저녁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음이었던 내 핸드폰은 실장님의 전화를 외면했다. 저녁 늦게 집에서 실장님이 보낸 전화와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집에서 낭패의 한숨을 내뱉었다. 내 머리를 쥐어 박았다. 아프진 않았다. 쥐어박는 시늉만 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사죄하는 마음으로 고개 숙이고 실장님 앞에 섰다. 부끄러웠다. 매시간 자필로 서명한 출석 증거가 있으니 노동부에 양해를 구해 보겠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칼이었다. 노동부 양해를 구하지 못한 실장님이 더 미안해하는 눈치여서 더 죄송하고 송구했다. 쥐구멍이 필요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오후쯤 옆 건물 옥상에서 공부하다 조는 이를 깨우는 멍멍이 집 구멍만 눈에 들어왔다. 이제 결석할 수 있는 여분은 거의 없다. 막다른 골목이라 수료 때까지 출결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총 6주 교육 중 5주는 교육원에서 1주는 현장 실습이다. 6주의 모든 교육은 끝났다. 시험 보고 합격증을 손에 쥐는 일만 남았다. 짧은 교육 기간이지만 효성 요양보호사 교육원 실장님의 의례적인 친절이 아닌 몸에 밴 친절이 단연 기억에 남았다. AI가 판치게 될 세상이 두렵다. 더불어 모든 선생님께서 열정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두 분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김효정 선생님과 장은주 선생님. 두 분 선생님의 지루하지 않고 재미나는 가르침으로 고개를 아래로 살짝 숙인 채 눈만 치켜 뜨고 선생님을 째려보는 일은 결코 없었다(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애처로운 모습은 없었다는 말씀). 김효정 선생님의 유머 덕분에 40여 명의 교육생이 오랜만에 학창 시절로 돌아가 탐닉해 볼 수 있었다. 한참 웃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