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이야기/수다로 푸는 세상

논산에 입소문 난 비염 치료 명의(논산 제일 신통의원) 첫 번째 방문기

by 威儀진칠수 2022. 11. 9.

<논산 제일신통의원>

 

     대략 4개월 전쯤 되었으니 초여름 싱그러운 풀 내음이 온 산에 가득했던 6월 초순 무렵이되겠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해병대 출신 모임이었다. 코로나19 장벽에 SNS로 서로 인사만 주고 받다가 얼굴을 마주 보기는 2년 반 만이다. 공주시내를 벗어나니 산과 들의 신록이 눈부신 자태로 인간을 유혹하기 바빴다. 꼬불꼬불한 오솔길은 겨우 차 한 대가 올라갈 정도의 좁은 길이다. 먼 산 새파란 청솔가지와 사방에 흩어져 있는 논밭 언저리 다양한 잡초가 보이는 이곳은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 마을이다. 대한민국 어느 시골이나 비슷한 상황이지만 이 동네라고 다를 리 없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낯선 이방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어떤 어르신은 해가 뉘엿뉘엿 졌는데도 밭에서 무슨 일에 그렇게나 열중이신지 허리는 폴드 모양새다. 아마 농사는 때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사방의 얕은 산은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지 않고 소리 없는 나이론 박수로 환영한다.

 

     멤버중 가장 젊은 해병대 및 직장 후배가 얼마 전 아름다운 자연 속에 전원주택 장만 소식을 전했다. 그이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텃밭을 가꾼다고 했다. 노후를 여기서 지낼 요량에 하나둘 밑받침 돌을 깔고 있는 것이다. 텃밭 모양새도 다양한 채소를 키우기 알맞게 갖추고, 비 오늘 날도 진흙탕 속에 빠질 염려가 없도록 보도블록으로 치장하고, 텃밭 가장자리엔 돌철망 축대로 단단하게 쌓으며 노년을 즐길 소중한 터전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전원주택은 우리 남정네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최근엔 그 로망의 열기가 좀 식기는 했지만, 여전히 선호하는 이들의 숫자는 만만치 않다.

 

     직장인들의 모임은 통상 시내 유명 음식점에서 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칩거한 세월이 아득히 가물 거린다. 교외의 맑고 신선한 공기가 몹시도 그리울 때다. 탁한 공기에 지쳐 있는 폐에도 소생의 기회를 어서 주어야 한다. 모두가 갖고 있던 이런 소망은 후배의 전원주택 장만 소식을 듣자마자 그곳이 모임 장소가 된 것이다. 주인장 후배의 흔쾌한 승낙과 멤버들의 열망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이심전심.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응당 아름다운 먹거리와 엔도르핀을 용솟음 치게 하는 두꺼비가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두꺼비 위력은 대단하다. 녹슨 기계는 윤활유를 쳐야 부드럽게 잘 돌아간다. 한동안 모이지 않았던 서먹한 모임에서도 윤활유는 필요하다. 그 윤활유 역할에는 단연 두꺼비가 엄지 척이지 않겠는가. 아무리 숫기 없어도 두꺼비 몇 잔이면 숙성된 오랜 친구가 되고만다. 물론 우리 모임은 이미 오래 전 친분이 지나친 나머지 가끔 추태 아닌 추태로 분위기를 업다운 시키는 분이 있긴 하다. 백열등은 새까만 밤에 빛의 역할에 충실하다. 모두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면 세상도 역시 이처럼 밝게 빛나겠지. 불빛의 경계를 벗어난 칠흑 같은 어둠과 한눈 돌리면 눈부시는 백열등 환한 불빛이 서로 대비되어 순식간 낭만의 공간에 빠진다. 숯불은 활활 타 오르고 있다. 아직 덜 연소되어 나는 연기와 불꽃 위에 얹혀진 석쇠 위에는 고기가 온몸을 새끼 꼬듯 비틀고 있다. 등짝이 뜨겁다며 괴기는 난리도 아니다. 제 때 뒤집지 않아 군데군데 탄 곳도 보인다. 탄 곳은 당연히 잘라내야 한다. 탄 고기는 안 먹느니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기가 극에 달한 멤버들은 군침을 연신 넘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고기는 노릇노릇 눈으로 먹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구워졌다. 상추, 쑥갓, 마늘, 고추 등은 이미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 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모두가 손을 보탠 덕분이다.

 

     시골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일교차가 심한 듯 하다. 다소 쌀쌀한 산속 저녁 온도이긴 하지만 장작불에서 퍼져나오는 열기가 낮은 온도를 상쇄한다. 여기에 알콜까지 보태진다면 냉온이 역전되어 웃통을 벗어 제끼는 멤버도 나오지 싶다. 자, 제 젓가락을 들어야 할 타임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중요한 찰나의 순간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단 말인가.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초대한 적이 결코 없는 불청객이 나를 찾은 것이다. 불청객이긴 하지만 이 불청객은 늘 나와 함께 한다. 초대하지 않았지만 늘 함께했던 불청객이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은 답답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당신은 심하게 재채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연신 재채기하며 휴지로 줄줄 흐르는 콧물을 훔치고 있으니 누군들 안타깝지 않겠는가. 한 때 직장 선배였고 해병대 기수로는 후배였던 한 분이 비염임을 한 눈에 알아봤다. “아이고, 선배님 비염 장난 아니시네요”. “저도 비염 때문에 개고생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얼마 전 말끔히 저승 보냈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어째 말투가 자신만만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후배는 지인을 통해 유명한 비염 치료 전문의원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래서 병은 방방곡곡 자랑하라 했던가. 우리 선조들의 번뜩이는 지혜는 늘 무지한 현대인을 일깨운다. 전국에 비염으로 고생하시는 분은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아무리 유명한 이비인후과를 다녀도 주사 맞고 약 먹는 동안 잠시 나아지는 듯 할 뿐 근본적인 치료는 애시당초 불능이다. 그래서 비염을 선천성 난치병에 가깝다고 했던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낫지 않으니 포기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비염에 좋다는 것은 다 해 봤다. 심지어, 수십 만의 유튜브 구독자를 자랑하는 의료 전문가가 알려주는 식염수 치료법도 시도해 보았다. 귀이개 솜에다 식염수를 묻혀 귓속에 넣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뻥이었다.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즉시 유튜브 구독 탈퇴하고 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처박았다. 비염 치료, 해 보지 않은 것 빼고 다 해 보았지만, 결과는 백약이 무효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후배가 알려주는 비염 치료 의원도 사실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서 스마트폰 펜으로 메모해 두었다. 언젠가 갈 것처럼 말이다. 비염이 극성 부린다면 안가고 버틸 재간은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비염이 난동을 부린들 어쩌겠는가. 무엇이든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모임의 목적은 친목이다. 친목 모임에는 무엇보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흠뻑 취해야 한다. 그 동안 풀지 못하고 쌓아 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도 풀어 헤쳐야 한다. 그리고 어깨 춤으로 유흥도 신나게 돋우어야 한다. 비염 하나 때문에 이런 목적을 간과할 수는 없다. 젓가락을 들고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즈음 저녁에 만끽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햇살에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거나 말거나 이제 오후에는 각자의 위치로 향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서울로, 어떤 분은 대전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세종으로 흩어져야 한다. 우리에겐 여전히 생업이 중요한 키워드다. 추억 한컷 보탠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 저편에 간직하고 우리는 각자 삶의 터전으로 찢어졌다.

 

     비염이란 친구는 한번 인연 맺으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이 의리의 사나이인지 여인인지 알수 없는 비염이라는 친구는 내가 가는 곳은 장소 불문하고 따른다. 특히 새벽녘에는 나에게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단히 끈질긴 친구다. 껌딱지도 이런 껌딱지가 없다. 내 책상 한쪽 구석에는 늘 맑은 콧물이 묻은 휴지투성이다. 책 보는 것이 작은 취미인데 비염은 얄밉도록 독서를 방해한다. 줄줄 흘러내리는 콧물은 코의 통로만으로 나가는 것이 역부족이었는지 눈물 통로까지 점령 한다. 콧물은 눈물로 둔갑하여 아주 성가시게 한다. 눈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괴롭히나.

 

     기어코 「논산」, 「제일 신통의원」, 「비염」을 키워드로 포털사이트 검색창을 두드렸다. 많은 방문기가 검색되었다. 여기저기 입소문, SNS 소문을 듣고 방문했던 분들이다. 한 번 다녀온 후 후기를 올리신 분들이 대다수였다. 아쉽게도 완치의 글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지 못한 것인가 하고 더 검색해 봤지만 여전히 그런 글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완치 후 기쁜 나머지 후기 올리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한 번 방문 후 효과를 보았다는 분은 많으니 방문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지 별수 없다. 가자, 가 보자, 가야 한다. 한 번 치료에 차도가 있다는 게 어딘가. 오늘 가야하나, 내일 가야하나 날짜만 만지작거리다 결심했다. 더 이상 미루다간 내 눈에서 콧물이 아닌 핏물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사후약방문이 되기 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답은 역시 실행이다. 이왕 가는 김에 집사람의 발가락 및 허리통증 치료도 진찰받기로 했다.

 

     출발은 서울 강북에서 새벽 4시 30분이다. 네비게이션은 약 3시간이 소요된다고 알려준다. 대략 쉬지 않고 밟는다면 7시 반쯤 도착 예정이다. 생리현상 해결을 위해 한 번쯤 휴게소에 들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8시쯤 도착할 것 같다. 내비는 예정 시간을 정확히 알려준다. 기특한 내비게이션, 너는 인류에게 많은 편리함을 주는구나. 나는 인류를 위해, 주변 이웃을 위한 작은 이익되는 일 하나라도 한 적 있는지.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다. 내비는 경부고속도로로 안내했다. 다양한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남쪽 지방 행차 시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 경부고속도로였다. 한 때 자주 다녔던 길이라 익숙하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경부고속도로 초입에는 차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무슨 놈의 차가 그렇게도 많더냐. 옆에 앉은 아내에게 도대체 어디에 무슨 일로 가는 사람들일까라고 했더니 무미건조하게 다들 우리와 비슷한 일로 가겠지 뭐. 세상 사는 것 별거 있더냐.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다. 고속도로 초입을 지나니 차량은 뜸했다. 논산 초입까지 오른쪽 발은 브레이크와 친하지 않았다.

 

     드디어 오전 7시 55분 즈음 그토록 블로거들의 칭찬이 자자했던 논산 제일 신통의원 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심 속 한적한 뒷길에 있는 의원으로 지레짐작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읍면 소재지 작은 마을이었다. 의원의 건물 외형은 블로그에서 봤던 것처럼 후줄근했다. 건축한 지 제법 되어 보였다. 아내에게 내가 주차하는 동안 내려서 줄을 좀 서달라고 부탁했다. 재수 없으면 점심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상사를 맞이할 수도 있다. 더욱 낭패인 것은 오후 진료로 밀려날 수도 있다. 아내에게 한 사람이라도 앞서 줄 서 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블로그 내용과 달리 병원 입구에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웬일이지? 길게 늘어선 줄이라면 병원 문 바깥까지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야 한다. 의아함을 안고 병원 문을 서둘러 당겼다. “당기시오”라고 되어 있었다. 병원 안에서도 줄 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의원 내부에는 서 너분의 환자만 의자에 기댄 채 조는 분도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리를 게슴츠레 쳐다보는 분도 있었다. 초진자가 낯선 표정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니 이미 방문 경험이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이방인임을 알아 차리고 자세히 알려 주셨다. “처음이신가 보네요, 네, 서울에서 왔는데요” 그분은 신청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셨다. 우리나라 국민의 친절도는 세계 상위 클라스다. 특히 시골 계시는 분들은 타고난 천성처럼 친절이 몸에 밴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잠깐의 망상에 젖었다. 그러나 절대 그럴 리 없는 일이다. 암튼 친절하신 그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 숙였다. 접수처 위에는 작은 종이 상자에 번호가 적힌 플라스틱(가로세로 각 2㎝) 번호판이 순서대로 가지런히 줄서 있었다. 번호표를 집어 들고 진료신청서를 작성하여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8시 30분경 간호사가 자신이 가진 번호를 부를 때 나가서 접수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18번이 적혀 있는 번호표를 집었다. 아내는 19번이었다. 진료신청서도 작성하였다. 아직 8시 30분까지는 35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모닝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가벼운 금단 증상이 있다. 금단 증상이라고 해서 금주할 때 보이는 중풍 처럼 손 떨림 현상은 아니다. 증상을 사라지게 하는 법은 커피 한 모금 마시는 일이다. 차에 있는 텀블러를 들고 이른 아침 문을 연 커피숍을 찾았다. 커피숍이 보이지 않는다. 읍면 동네이니 커피숍이 많을 리 없다. 간헐적으로 보이는 커피숍도 오픈 전이다. 오픈한 커피숍을 찾아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으로 행군했다. 지나가는 좌우 길거리 간판에 “대추” 글자가 적힌 곳이 보인다. 지나는 아주머니께 여쭈었다. “이곳은 대추가 유명한가 보네요”라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23일까지 대추 축제가 있었다고 했다. 아내가 대추를 좋아하는지라 치료 끝나고 구매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어허 그런데 문을 연 커피숍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의원에서 약 15분 정도 걸었다. 한적한 논두렁 주변에 드디어 그토록 찾던 문 연 커피집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브랜드 가격 가리지 않고 얼른 들어갔다.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텀블러에 담아 달라고 했더니 “한 사이즈 큰 것으로 해야겠네요.” 라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고개 들어 메뉴 테이블을 보면서 대추에 관해 물었더니 이 동네가 대추로 유명하다고 했다. 자신도 대추차 만들 때 여기 대추를 쓴다고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8시 30분이 되기 전 의원에 도착해야 한다. 간호사님이 번호 부를 때 나타나지 않으면 패스되고 맨 뒷번호로 가야 한다 했다. 커피숍을 찾아 걸어 온 시간이 15분 정도가 되니 걸어 온 시간만큼 다시 간다면 8시 25분쯤 의원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뽑은 18번 번호를 부르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혹시 늦지 않을까 봐 종종걸음을 쳤다. 가까스로 8시 30분이 되기 전인 25분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열었다. 종이컵을 찾아 커피 한잔을 따라 마셨다. 기가 막히다. 퇴근길 출출한 빈속에 소주 한잔 넘길 때 목구멍에서 위벽을 타고 흐르는 찌릿찌릿한 전율. 참 애주가는 알리라(물론 지금 나는 술을 끊었다). 소주 한잔의 전율처럼 따스한 아메리카노의 향이 빈 위장과 냉기 가득한 손발을 따스히 녹여주었다.

 

     8시 30분이 되자 1번을 불렀다. 10번 이내 번호를 거머쥔 분들이 우르러 몰려 나왔다. 접수대는 북적거렸다. 간호사님은 번호 부르는 분만 접수대로 나오시고 나머지 분은 그대로 앉아 계시라고 외쳤다. 접수대로 나왔던 분들이 슬그머니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8시 36분경 내 이름이 상황판에 뜨면서 접수 사실을 알려 준다. 아내의 이름은 내 뒤를 이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환자 한 명당 약 5분의 진료 시간이 주어지는 것 같다고 어느 블로거가 이야기한 것 같다. 내 번호는 18번이니 17명의 환자가 진료를 마치려면 대략 10시쯤 내 차례가 올 것 같다. 이 예측도 거의 맞았다. 난 아무래도 돗자리를 깔아야 할 신기를 가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약 2년간 사주 공부 중에 있다. 인생 66년 짬밥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18번이 17번으로 16번으로... 더디어 1번이 진료 중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 뒤 2번에 내 이름이 보인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간 지 5분 정도 지나면 어김없이 들어갔던 환자가 나온다. 내 앞에 들어갔던 환자가 나온다. 잠시 후 진칠수를 부르는 기계음이 들린다. 진료실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동시에 진료실 안에서 간호사님도 문을 당기면서 내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줄탁동시.

 

     병원 건물도 다소 낡았고 시골에 있는 병원인지라 경험이 많은 의사 선생님이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환자를 맞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던 젊은 선생님이 나를 맞이해 주셨다. 한순간 이 선생님은 젊은 나이에 어떤 치료법을 개발하였기에 이렇게 전국에서 많은 비염 환자들이 방문하는가 싶었다. 이렇게도 보람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아픈 사람을 잘 돌보는 일은 복되고 거룩한 일이다. 이 선생님의 의술 혜택을 나도 받아 보자.

 

     환자인 내가 먼저 증상을 상세히 설명 드렸다. 재채기 후 콧물이 봇물 터지듯 흐르고, 비염이 시작된 지는 약 10년이 넘었고, 새벽 기상 후 재채기와 콧물 증상이 유독 심하다고 했다. 의원을 찾는 대부분 환자가 비슷한 증상이라고 했다. 먼저 콧속을 보더니 염증도 보이고, 코 벽이 헐었고, 코피도 간헐적으로 나는 것 같고, 코 막힘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앞에 세 가지는 맞는데 코막힘은 초반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렸다. 콧물이 줄줄 흘러내릴 때 눈에서도 분비물이 흘러서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라 했다. 이 또한 대부분 환자가 겪는 고통이자 증상 중 하나라 했다. 눈코귀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언제인가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고통에 동네 어느 안과를 찾은 적이 있다. 코 질환은 언급조차도 하지 않고 눈이 피로해서 그렇다고 단정 하면서 약과 일상적인 빛 쏘이는 치료만 하고 나왔다. 효과는 제로였다. 의사에 대한 내 신뢰는 곤두박질했다. 신통 제일의원 선생님은 비염을 치료하면 눈도 당연히 좋아진다고 했다. 사실 눈물은 콧물과 이웃 사촌 관계다. 콧물 나오는 비염 치료가 선행되지 않고 눈물 통제는 불가능하다.

 

     곧 바로 주사 치료를 시작했다. 간호사님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책상에서 공부하다 피곤하면 양 손바닥을 겹쳐서 책상에 댄 채 얼굴을 그 손바닥 위에 올리고 쉬는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 양쪽 귓불 언저리 좌우에 주사를 한 방씩 놓을 것이라 했다. 뻥튀기 아저씨가 뻥튀기할 때 “뻥이요” 라고 외치듯이 간호사님은 주삿바늘이 들어갈 때 「딱~~끔」 이라고 했다. 먼저 좌측 귓불 언저리에 선생님이 바늘을 꽂을 때 간호사님은 고지했던 것처럼 「딱~~끔」이라 했다. 어이쿠야 살짝 아팠다. 다음 우측 귓불 언저리에 한방 놓을 때도 역시 간호사님은 「딱~~끔」이라 했다. 역시 말 그대로 따끔했다. 그러나 참을 만했다. 그리고 상의를 목까지 올리라 했다. 목덜미 살짝 밑 부분 양어깨 중앙에 2방을 놓았다. 이때도 간호사님은 「딱~~끔」 이라 했다. 침대에 누운 자세에서 콧방울 양쪽 좌우에 각 1방씩 놓았다. 이때도 「딱~~끔」이라 했다. 일어나 앉은 자세에서 고개를 숙인 채 목덜미에 1방 놓을 때 「딱~~끔」했다. 이렇게 총 일곱 방의 주사를 맞았다. 간호사님의 「딱~~끔」 소리도 일곱 번이나 리듬을 탔다. 딱~~끔이라는 리듬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자꾸 되뇐다. 나는 한방에서 침을 여러 곳 동시에 맞아 본 적은 있지만, 양의원에서 주사 일곱 방을 동시에 맞아 본 적은 난생처음이다. 마치 한의원에서 침을 맞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은 1주일 간격으로 총 3번을 방문해야 한다고 하였다. “선생님, 이렇게 3번 치료를 받으면 비염이 완치되나요?”. “아니요, 비염은 완치가 없답니다”. 오잉 무슨 말씀이지? 현대의술로는 아직도 미지의 분야인가. 작은 실망은 했지만 어느 정도 호전만 되어도 그게 어딘가 싶었다. 진료 마치고 나오니 접수처에서 간호사님이 고개 들고 나를 보았다. 계산해야 한다는 말이렷다. 치료비는 약 28,000원이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논산 제일 신통의원을 방문하여 첫 번째 진료를 마쳤다.

 

     의사 선생님께 하나 더 여쭈었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60대에 양쪽 무릎 수술하시고 지금 88세 미수가 되셨다. 엉덩이와 발목 부분 통증을 호소하시는데 선생님께 진료 한번 받게 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동네 정형외과에서 진료받으셔요” 라고 하신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의아했다. 병원 대부분은 환자가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하도록 갖은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선생님은 동네 병원을 이용하라 하신다. 이상한 선생님이신가. 돈 벌고 싶지 않은 선생님이신가. 돈을 좋아하지 않으신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은 거의 매일 발목통증으로 창원에 있는 이 병원 저 병원 이 한의원 저 한의원 가 보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로 병원 투어를 하시는 분이다. 그냥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렸다. 논산 제일 신통의원의 주된 진료과목이 “통증 치료”와 “비염 치료”였다. 행여나 운이 좋아 환자와 선생님의 궁합이 맞는다면 어머니 발목통증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시는 동안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겪다가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여쭈었는데 아쉬운 마음이다. 나는 비염 때문에 이 병원을 방문하였지만, 아내는 무릎관절, 허리협착증, 발가락 골절 후 후유증으로 방문했기에 향후 아내의 치료 경과를 보고 조금이라도 낫는 기미가 보이면 의사 선생님의 권유는 무시하고 어머님을 한번 모시고 올참이다. 선생님은 많은 환자를 감당하시기에 무척 힘들지 싶다. 하루에 약 100명의 환자를 맞이하시는 듯했다. 환자 한 명당 7방의 주사를 놓으니 하루에 700방의 주사를 놓는다는 결론이다. 물론 환자 숫자에 따라 유동적일 수는 있다. 주사도 간호사 선생님이 아닌 의사 선생님이 직접 놓았다. 창원 환자까지 돌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역부족이지 싶다. 동업자에 대한 의료 상도의도 배려된 것일까.

 

     어둠이 아직 가시기 전 새벽에 나왔으니 아침은 당연히 건너뛰었다. 물론 아내와 나는 평소에도 아침은 건너뛰고 아점으로 대신한다. 오늘은 특별한 아점으로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순댓국 집을 찾았다. TV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순댓국집이라고 유리창에 프로그램명과 이미지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다. 배가 고픈 나머지 시장기가 반찬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맛집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유명한 대추 동네에 와서 그냥 빈손으로 갈 수야 없지 않겠는가. 온 김에 지역경제 발전에 일조하고 싶었다. 솔직히 이런 이유보다 아내가 대추를 무척 좋아했다. 순댓국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대추가게에 들렀다. 아내는 대추가 자신의 몸에 딱 맞는다며 2킬로를 구매했다. 누가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6만 원짜리 꿀도 한 병 샀다. 예비 며느리가 좋아한다면서 생대추도 한 통 샀다. SUV 뒤 트렁크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듯했다. 오늘 하루 움직인 결과가 나도 아내도 좋게 나왔으면 싶다. 더불어 이 병원을 방문하신 모든 분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더불어 사는 세상에 함께 빌어 본다. 일단 3차례 모두 치료를 받을 생각이다.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경과를 보고 치료 결과를 올리고자 한다.   끝.

 

https://blog.naver.com/luckchil7/222924372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