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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수다로 푸는 세상

비도 눈도 모두 자연이다

by 威儀진칠수 2022. 3. 18.

     코로나19가 체육관과 의절을 강요했다. 따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렇게 반강제로 체육관에 발길을 끊은 지가 코로나19 창궐과 비슷했으니 2년여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나는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운동중독 증상이 있다. 그 운동이라는 것은 줄넘기다. 하루라도 이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다. 소화도 잘되지 않는다. 일도 손에 착착 감기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쩌다 운동을 거르는 날이면 그날은 온종일 온몸이 편치 않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줄넘기를 하는 편이다. 심지어 해외에 나갈 때도 출장 준비물 1호가 줄넘기였다. 운동중독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스스로 진단은 했지만 이와 달리 중증이 아닌지 심히 의심된다. 설사 운동중독증이라 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싶다. 언론 인터뷰에서 어떤 원로 의사는 운동중독증도 운동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하면서 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 위험을 감수하고 체육관행을 결심해 보지만 우리 집 대장의 화산 같은 호통에 야옹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이내 포기하고 만다. 체육관은 가지 못하지만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편치 않음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전체 건강에 적신호라도 오면 낭패다. 인생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고 홀로다. 내 몸 내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는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본다. 줄넘기할 수 있는 장소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동네이면 도로는 비록 차가 많이 다니지 않지만 도로가 딱딱하여 무릎관절에 최악이다. 그래서 제외했다. 주변에 즐비한 빌라나 연립은 1층이 필로티 구조다. 그래서 공간은 있지만 여기도 애로점이 있다. 먼저 도로와 마찬가지로 바닥이 딱딱한 시멘트다. 그리고 줄넘기 시간이 이른 새벽이라 조용한 나머지 작은 줄넘기 소음도 크게 들린다. 주민들 수면을 방해할 수 있는 일이다. 얼른 생각난 곳이 하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일상에서 문제가 생길 때 주변을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바로 집 앞에 어린이 놀이터 겸 쉼터 있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어린이 놀이터는 바닥이 쿠션이라 줄넘기에 그만이다. 무릎이 상할 리 없다. 또한 줄넘기 소음도 거의 없다. 안성맞춤은 이런 때 사용하는 적절한 단어다. 이렇게 물색한 쿠션이 잘 깔린 동네 놀이터에서 수개월째 줄넘기 삼매에 빠져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새벽예불과 독경으로 약 1시간을 보낸다. 예가 끝나고 6시 조금 지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밖으로 나온다. 바깥은 아직 어둑하다. 손에는 줄넘기가 들려있다. 콧물이 나오면 닦아야 해서 왼쪽 운동복 주머니에 화장지 한 조각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동네 놀이터는 전날 깊은 밤 세상 시름을 잊고자 놀았던 사람들 흔적이 가득하다. 옛 선사는 허공을 나는 새처럼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했는데 빈 맥주 캔, 각종 안주와 음식 포장지로 흔적을 잔뜩 남겼다. 크게 보이는 흔적 덩어리들만 주워 쓰레기통에 담고 준비운동을 시작한다.

 

     맑은 날은 해님이 고개를 내밀 시간이라 먼 거리에 있는 물체까지 알아볼 정도로 주변은 훤하다. 오늘은 날씨가 칙칙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허공은 잿빛으로 가득하다. 뉴스에서 기상청의 비 소식을 듣긴 했다. 곧 한 소식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준비단계인지 비 소식은 없었다.

 

     세찬 빗줄기가 쏟아질지 모른다. 그런 비를 오롯이 만나기 전에 줄넘기 3,000번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마음이 바빠진다. 행동은 마음과 세트라 덩달아 급해진다. 평소보다 줄넘기 속도를 올려본다. 줄넘기는 뜀박질하는 발바닥을 쉽게 통과하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1,000번을 걸림 없이 거뜬히 하는데 겨우 50번도 넘지 못하고 걸린다. 급하면 돌아가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서둘러도 별수 없이 비를 만나고 만다. 자연을 거슬러 보겠다는 내 무모함이 금세 꼬리를 내렸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비는 내렸다. 나도 덩달아 자연스러워 지려해 본다. 줄넘기에 빗물이 튀어 운동화가 젖는다. 다행히 쏟아지는 소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가랑비나 이슬비도 아니다. 그냥 추적추적 내리는 비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비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비는 긴 시간 내린다. 온종일 또는 몇 날 며칠 내리는 때도 있다. 추적추적이란 단어 속에는 은연중 부정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습기로 인해 끈적끈적함이 피부에 붙어서 기분을 언짢게 할 것은 느낌이 단어 속에서 솔솔 풍긴다.

 

     평소에도 나는 그다지 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더 솔직해지자. 비는 싫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비온다고 짜증을 낸 적도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어쩐지 더 싫었다. 물론 이유 없이 싫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비 오는 날은 바짓가랑이 젖는 것이 싫다. 신발에 구멍 난 곳이 없는데도 어느새 발바닥이 축축해지는 것도 싫다. 우산을 손에 들어야 하니 자유자재로 손을 쓰지 못하는 것도 비가 싫은 이유다. 비를 싫어하는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고 보니 내가 우스웠다. 그만한 일로 비가 싫다며 징징거리다니 비가 참 싫은 모양이다.

 

     그래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나와 궁합 제로다. 비 오는 날 카페 구석진 곳에 나 홀로 앉아 지난 일을 회상하며 감상에 젖어 보는 일 이외 딱히 좋아할 구석은 없는 것이 비이지 싶다. 아하, 이런 큰일 날 발언을~. 당장 마셔야 하는 물은 어쩌고, 먹고 살아야 하는 농산물 지을 물은 또 어쩌라고. 생각 좀 깊이 하고 이야기하시지. 당장 취소다.

 

     아무튼 사람들 대부분은 비보다 눈 오는 것을 좋아한다. 초겨울 그해 첫눈을 만나기라도 하면 눈이라는 희귀한 물건을 생전 처음 본 동남아 사람들처럼 호들갑을 떤다. 연인들끼리는 그해 첫눈 내리는 날 만나자는 약속을 일찌감치 하곤 한다. 분위기 잡기에 그만인 잿빛 하늘에서 새하얀 함박눈이 하늘하늘 내리는 날이면 나도 부푼 마음이고, 너는 들뜬 마음이고, 강아지마저도 흥분된 행동을 보인다. 이렇게 살아 있는 생명을 기분 좋게 하는 물건이 눈이다. 그래서 모두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나 보다.

 

     그런데 비도 자연이고 눈도 자연이다. 자연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자기의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은 좋아하고 비는 싫어한다. 홀대당하는 비는 얼마나 슬플까. 쓸모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연을 입맛대로 느끼며 가지려 한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자연을 골라 즐기려는 행위는 자연을 편식하는 것이다. 편식은 내 감정의 불균형도 초래하지만 자연을 편견으로 바라보는 것이므로 자연이 마음 아파할지도 모른다. 자연도 나 홀로 독야청청할 수는 없다. 비도 눈도 다른 여러 자연과 어우러져야 우주가 잘 진행될 것이다. 더구나 사람의 발길과 손을 타게 해서 자연을 즐기는 행위는 절대자의 금기 사항이기도 하다. 파헤치면 자연은 엄청난 고통을 호소한다. 인간을 저주할 것이다. 그 저주는 당대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대에 오지 않는다고 저주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스러운 후대들이 고스란히 응징받게 된다. 왜 아무 죄도 없는 후손이 조상의 업으로 응징받아야 하는가. 자연은 인위적인 조장이나 조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별도 없어야 한다. 사람도 차별을 싫어하듯 자연도 차별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렇게 나는 눈은 좋아하고 비는 철저하게 싫어했다. 그러나 비도 자연의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마음을 달리 먹으니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바짓가랑이 좀 젖으면 어떤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성능 좋은 세탁기로 빨면 된다. 손에 든 우산이 다소 거추장스러우면 어떤가. 우산 위에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마음과 발길 닿는 카페에 들러 감상에 젖는 것도 꽤 괜찮은 일 아니겠는가. 이렇게 마음을 바꾸어 비도 자연 일부라 생각하니 비도 나를 자연으로 대하는 것 같다. 비라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자연이 아우러져 둥기둥기 한바탕 춤이라도 추면 어떨까.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아닌 보슬보슬 내리는 빗속에서 줄넘기 3,000번을 거뜬히 채웠다. 몸은 촉촉이 젖은 비로 무게가 더 했을 텐데도 가뿐함이 느껴졌다. 자연을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자연도 좋고 인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