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사용하는 “절”이라는 용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사찰을 의미하는 “절”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사찰에서 조석예불이나 사시예불 때 부처님께 오체투지 형식으로 예를 표현하는 의미의 “절”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절”은 후자의 “절”이다. “절”이라고 하면 보통 삼배, 백팔 배, 삼천 배 등이 생각날 것이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삼보일배”라는 절도 있다.
그러면 삼보일배란 어떤 절인가. 세 걸음 걷고 큰절 한 번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세 걸음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삼독인 탐진치貪瞋痴와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악업을 말한다. 이러한 탐진치와 신구의로 지은 악업 소멸을 위해 삼보일배 행한다. 필요할 때 스님 또는 불자들은 서원을 세우고 삼보일배를 행함으로써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다.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에서는 행자들의 삼보일배 수행 과정이 들어있다. 월정사 일주문 조금 지난 지점에서 팔각구층석탑까지 행하는 삼보일배와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행하는 두 차례 삼보일배가 있다. 삼보일배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는 것이다.
그런데 삼보일배를 수행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소수의 약자가 국가 등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행동 등에 반대 의사를 표하기 위해 하는 경우다. 소위 말로 해서 먹히지 않을 때 삼보일배를 택하여 경종을 울려 주고자 하는 것이다. 대체로 종교인 등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이러한 삼보일배를 행하는 중심에 있다. 그리고 개인의 잘못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을 때 이에 대한 뉘우침의 의미로 삼보일배를 하는 경우도 간헐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삼보일배를 선택하는 것은 수행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이나 불합리한 정책을 삼보일배로 사회 전체에 널리 알려서 공론화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것이다. 2000년대 초 각 종교지도자가 함께 모여 새만금 간척지 개발에 따른 환경훼손과 생태파괴를 막기 위해 종교적 차원을 떠나 삼보일배를 한 적 있었다. 물론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삼보일배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다른 정책 수립 때 신중히 처리하게 하는 효과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국가를 비롯한 힘 있는 기관들의 막무가내식 정책에 대한 철회나 반대 표시로 삼보일배가 행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EBS 한국기행 프로그램에서 “사찰 기행 푸른 눈 스님의 삼보일배”가 방영되었다. 평소 자연 다큐나 산중생활하시는 스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편이다. 이날 한국 기행에서는 외국인 스님의 삼보일배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삼보일배 자체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기이한데 그것도 외국인 스님이 삼보일배를 하신다고 하니 자못 궁금함이 더했다. 사연의 중심이 무엇인가 집중하여 시청하게 되었다.
그분은 체코 출신으로 2009년 송광사에서 출가한 정관스님이었다. 스님은 삼보일배하게 된 배경을 방송에서 소개해 주셨다. 스님들의 모습은 대체로 부처님처럼 인자한 모습이다. 정관 스님도 자비심이 가득한 부처님 모습이었다. 사람 내면의 모습은 굳이 외과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외모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스님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어린이가 희생당하고 있는 현실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다. 이를 보다 못한 나머지 평화 기원 삼보일배를 하시게 된 것이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송광사에서 조계사까지 장장 320㎞의 먼 거리를 3개월 여정으로 하루 8시간씩 강행군하는 삼보일배였다. 스님은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위험도 생각하지 않으시고 삼보일배에 매진하셨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면 삼보일배를 잠시 중단하셨다. 그리고 텐트를 직접 치고 거기서 주무시는 고행조차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식사는 최대한 간소하게 해결하시는 것 같았다. 삼보일배 자체만으로도 고행이다. 스님은 텐트와 끼니를 실은 손수레를 직접 끌고 삼보일배를 하셨다. 고통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화면에 비치는 스님의 이런 모습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명분 없는 전쟁으로 어린이의 희생이 안타까웠다는 스님의 말씀에 그저 먹먹했다. 지나는 길목에 많은 국민이 격려해 주시는 모습에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괜스레 그분들이 고마웠다. 안락한 집안에 앉아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나를 탓해 보기도 했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가. 얼마나 내 주변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인가. 많은 생각들이 난무하며 요동쳤다. 자책만 하고 있다면 더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방송은 끝났다. 가슴 먹먹함의 여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삼보일배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11월 12일(토) 조계사에 도착한다고 했다. 도착하는 날 기꺼이 조계사를 방문하여 스님의 대장정을 축하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약 한 달 가까이 잊고 있다가 달력에 표시해 둔 스님 도착일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 중간 유튜브를 재시청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격려의 글도 올리면서 먼지만큼 만이라도 작은 지원이 될 수 있길 기원했다.
11월 11일 도착 전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소와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송광사 알림창에 스님 트위터가 소개되었다. 트위터에는 한성대역에서 길상사까지 여정이 게시되어 있었다. 최종 목적지가 조계사에서 길상사로 변경된 것이다. 하마터면 스님의 도착 모습을 놓칠 뻔했다. 토요일 아침 조계사에서 오지 않는 스님을 마냥 기다릴 뻔한 것이었다. 후일담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의 격려가 오히려 삼보일배에 걸림돌로 작용하여 스님께서 자취를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늦게라도 알았으니 마지막 여정을 꼭 함께하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한성대역에서 10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서둘렀으나 천성이 게을러 11시 20경 길상사로 향하고 있는 정관 스님을 뵌 것이다. 스님은 고군분투하셨다. 화면에서 뵙던 그 모습이었다. 묵묵하게 삼보일배에 임하시는 스님의 모습을 뵈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스님 뒤로 촬영하시는 거사님 한 분과 두 분의 스님이 따르고 있었다(송광사에서 오신 스님이셨다. 스님 덕분에 길상사에서 점심 공양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을 통해 스님의 삼보일배를 접하게 된 다른 두 보살님도 스님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스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맨 뒤에서 조용히 삼보반배를 하면서 따랐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힐끗거리며 쳐다보았다. 길 건너 맞은 길에서 내려오시던 보살님 한 분이 삼보일배하시는 정관 스님을 보자 바로 길바닥에서 스님을 향해 삼보를 하시는 것이었다. 또 울컥하고 말았다. 정관 스님은 11시 50분경 길상사 극락전에 도착했다. 법당 밖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가사로 갈아입으시고 극락전에 예를 올리셨다. 삼보일배 대장정을 회향하시는 시간을 가지셨다. 나와 뒤를 따르시던 보살님도 극락전 한쪽 모서리에서 정관 스님의 회향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숟가락을 얹었다. 부끄럽지만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정관 스님은 회향을 마치시고 다른 스님들과 공양간으로 가셨다. 스님은 이 큰일을 하시고도 아무렇지 않으셨다. 진정한 무주상보시를 보여주고 계셨다. 나와 두 보살님도 송광사 미디어지원팀 소임 스님의 배려로 공양간에서 공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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